2025년 9월28일 주일설교: “답이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작성자 세빛교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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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성일 25-09-28 10:49
“답이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본문
욥기 1:20–22 / 욥기 42:1–6
1.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평생 성실하게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가정이 무너지고, 병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왜 저입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오늘 본문 속의 욥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하게 살던 사람, 의로운 사람, 누구보다 신실했던 사람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2. 고난의 시작
욥은 한순간에 재산을 잃었습니다. 양과 낙타, 종들이 약탈당하고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열 자녀가 잔치를 벌이다가 집이 무너져 죽었습니다.
뒤이어 자신의 건강까지 무너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종기가 나 고통 속에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재 가운데 앉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단순한 불운일까요? 아닙니다.
욥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는, ‘이유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무너진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 고백은 고난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주권자이심을 인정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3. 친구들의 위로와 논쟁
이 소식을 듣고 친구 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7일 동안 함께 울며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욥아, 네가 죄를 지었으니 이런 고난이 오는 거다. 회개하라.”
“네가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 거다.”
여러분, 이 말이 위로가 될까요?
오히려 욥은 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립니다.
“믿음이 부족하니까 그렇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러나 욥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고난은 단순히 죄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을요.
4. 욥의 부르짖음과 믿음의 고백
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러나 그 절망의 고백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지막 날에 내가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시다는 믿음.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십니다.
5. 하나님의 응답 — 폭풍 가운데 나타나심
마침내 하나님이 욥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왜 내 자녀가 죽었습니까? 왜 내 건강이 무너졌습니까?”
이 질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바다의 한계를 정한 이가 누구냐?”
즉, 하나님은 “네가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나는 창조주요, 너는 피조물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설명으로 다 풀어주시는 대신, 하나님의 존재와 주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평생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설명이 아니라 임재, 해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필요합니다.
6. 회복과 결론
욥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리고 그는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욥을 회복시키십니다.
재산을 두 배로 주시고, 새로운 자녀를 주시며, 장수의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진짜 회복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욥의 신앙이 더 깊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욥은 하나님을 ‘조건적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 때문에 경외합니다.
7. 적용과 도전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이해로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풀립니다.
고난당하는 이에게 우리는 정죄가 아니라 동행과 기도로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더 깊이, 하나님 중심으로 빚어 가십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도 설명할 수 없는 고난 속에 있는 분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 침묵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자이시며, 그분은 반드시 살아 계십니다.
결론
욥은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고난 속에서 답을 얻으려 애쓰기보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신다.”
이 믿음이 오늘 우리 삶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설교 제목
“답이 없는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다”
본문
욥기 1:20–22 / 욥기 42:1–6
1. 서론
사랑하는 성도 여러분, 인생에는 우리가 이해할 수 없는 순간들이 찾아옵니다.
평생 성실하게 살던 사람이 하루아침에 직장을 잃고, 가정이 무너지고, 병이 찾아옵니다.
그럴 때 우리는 이렇게 묻습니다.
“하나님, 왜 저입니까? 제가 무엇을 잘못했습니까?”
오늘 본문 속의 욥이 바로 그런 사람입니다.
하나님을 경외하고 정직하게 살던 사람, 의로운 사람, 누구보다 신실했던 사람이었지만, 하루아침에 모든 것을 잃었습니다.
그의 이야기를 통해, 우리도 고난 가운데 어떻게 하나님을 바라보아야 하는지 함께 나누기를 원합니다.
2. 고난의 시작
욥은 한순간에 재산을 잃었습니다. 양과 낙타, 종들이 약탈당하고 불에 타버렸습니다.
그리고 가장 사랑하는 열 자녀가 잔치를 벌이다가 집이 무너져 죽었습니다.
뒤이어 자신의 건강까지 무너져, 머리끝부터 발끝까지 종기가 나 고통 속에서 기와 조각으로 몸을 긁으며 재 가운데 앉게 됩니다.
여러분, 이것이 단순한 불운일까요? 아닙니다.
욥의 입장에서 보면 아무런 설명도 들을 수 없는, ‘이유 없는 고난’이었습니다.
그런데 욥은 무너진 자리에서 이렇게 고백합니다.
“주신 이도 여호와시요, 취하신 이도 여호와시오니, 여호와의 이름이 찬송을 받으실지니이다.”
이 고백은 고난의 한가운데서도 하나님이 여전히 주권자이심을 인정한 믿음의 고백입니다.
3. 친구들의 위로와 논쟁
이 소식을 듣고 친구 세 사람이 찾아왔습니다. 처음에는 7일 동안 함께 울며 침묵했습니다. 그러나 시간이 지나자 입을 열기 시작했습니다.
“욥아, 네가 죄를 지었으니 이런 고난이 오는 거다. 회개하라.”
“네가 잘못했으니 벌을 받는 거다.”
여러분, 이 말이 위로가 될까요?
오히려 욥은 더 큰 상처를 받았습니다. 왜냐하면 그는 죄 때문에 이런 고난을 당한 것이 아니었기 때문입니다.
사람은 이해할 수 없는 고난 앞에서 너무 쉽게 결론을 내립니다.
“믿음이 부족하니까 그렇다. 기도가 부족해서 그렇다.”
그러나 욥기는 우리에게 말합니다. 고난은 단순히 죄의 결과만은 아니라는 것을요.
4. 욥의 부르짖음과 믿음의 고백
욥은 이해할 수 없는 상황 속에서 눈물로 부르짖습니다.
“내가 태어나지 않았다면 더 좋았을 것이다. 하나님, 왜 내게 이런 일이 일어났습니까?”
그러나 그 절망의 고백 가운데서도 희망을 잃지 않습니다.
“내가 아는 것은,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시니 마지막 날에 내가 하나님을 뵈올 것이다.”
여러분, 이것이 신앙의 본질입니다.
설명되지 않는 고난 속에서도, 하나님이 살아 계시며 나의 삶을 붙들고 계시다는 믿음.
우리는 이해할 수 없지만, 하나님은 여전히 우리 곁에 계십니다.
5. 하나님의 응답 — 폭풍 가운데 나타나심
마침내 하나님이 욥 앞에 나타나십니다.
그런데 하나님은 욥의 질문에 직접 대답하지 않으십니다.
“왜 내 자녀가 죽었습니까? 왜 내 건강이 무너졌습니까?”
이 질문에 하나님은 이렇게 말씀하십니다.
“내가 땅의 기초를 놓을 때 네가 어디 있었느냐? 바다의 한계를 정한 이가 누구냐?”
즉, 하나님은 “네가 알 수 없는 일이 있다. 나는 창조주요, 너는 피조물이다.”라는 사실을 보여주십니다.
설명으로 다 풀어주시는 대신, 하나님의 존재와 주권을 드러내신 것입니다.
여러분, 우리도 그렇습니다.
때로는 왜 그런 일이 일어났는지 평생 몰라도 됩니다.
그러나 중요한 것은, 그 자리에서 하나님을 만나는 것입니다.
설명이 아니라 임재, 해답이 아니라 하나님 자신이 필요합니다.
6. 회복과 결론
욥은 하나님의 말씀 앞에 무릎을 꿇고 이렇게 고백합니다.
“내가 주께 대하여 귀로 듣기만 하였사오나 이제는 눈으로 주를 뵈옵나이다.”
그리고 그는 티끌과 재 가운데서 회개합니다.
여기서 회개는 죄 때문이 아니라, 하나님을 내 기준으로 재단하려 했던 교만을 내려놓는 고백이었습니다.
그때 하나님은 욥을 회복시키십니다.
재산을 두 배로 주시고, 새로운 자녀를 주시며, 장수의 복을 누리게 하십니다.
그러나 진짜 회복은 외적인 것이 아니라, 욥의 신앙이 더 깊어졌다는 데 있습니다.
이제 욥은 하나님을 ‘조건적 신앙’이 아니라 ‘하나님이 하나님 되심’ 때문에 경외합니다.
7. 적용과 도전
사랑하는 여러분,
고난은 이해로 풀리지 않습니다. 하나님을 만남으로 풀립니다.
고난당하는 이에게 우리는 정죄가 아니라 동행과 기도로 함께해야 합니다.
하나님은 고난을 통해 우리의 신앙을 더 깊이, 하나님 중심으로 빚어 가십니다.
지금 여러분 중에도 설명할 수 없는 고난 속에 있는 분이 있을 겁니다.
하나님은 그 자리에 침묵하실 수도 있습니다. 그러나 기억하십시오.
하나님은 여전히 주권자이시며, 그분은 반드시 살아 계십니다.
결론
욥은 답을 얻지 못했습니다. 대신 하나님을 만났습니다.
우리도 인생의 고난 속에서 답을 얻으려 애쓰기보다, 하나님을 만나야 합니다.
“나의 구속자가 살아 계신다.”
이 믿음이 오늘 우리 삶의 고백이 되기를 축복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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